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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읽기]김치, 그 신비한 맛 |
[과학읽기]김치, 그 신비한 맛
[세계일보 2004-08-26 21:12]
멀리 신화의 나라 그리스에서 개최되고 있는 아테네올림픽도 후반부로 접어들었다. 연일 전해오는 태극전사들의 승전보는 경기 침체와 태풍 피해로 우울한 우리 국민들에게 커다란 위안이 아닐 수 없다.
대한민국은 이제 메달 수로만 따지자면 세계 10위권의 스포츠 강국으로 자리를 굳히고 있다. 그런데 우리 선수들이 신체적 조건이 우세한 구미 선수들과 맞서 당당하게 승리를 거둘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인가.
더위에도 지치지 않고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근성과 막판 뒤집기의 뒷심을 기르게 한 원동력은 뭐니뭐니해도 김치의 힘이 아닐까.
한국에서 공수한 김치는 현지 올림픽 선수촌 식당에서 쟁탈전을 벌이게 하는 등 우리나라 선수나 다른 나라 선수 가릴 것 없이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여기에다 우리 선수들은 숙성이 덜된 김치 팩을 따가운 햇살이 비치는 선수촌 숙소 베란다에 내놓아 하루 이틀만에 고국에서 맛볼 수 있는 시큼한 풍미의 오리지널 김치로 익혀 내는 노하우를 불과 며칠새에 터득해 전파하고 있으니 김치에 관한 한 우리는 어딜 가나 정말 못말리는 국민이다.
처음 김치를 먹은 사람들은 누구나 땀을 뻘뻘 흘리고 심지어 눈물까지 흘리며 그 자극성에 아주 고통스러워 한다. 그런 매운 맛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다시 김치를 찾게 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김치에 들어가는 주 향신료인 고추 때문이라 생각된다. 고추도 니코틴이나 코카인처럼 중독성이 있다고 주장하는 생리학자들도 있다.
고추의 독특한 매운맛은 씨와 껍질에 들어있는 캅사이신이라는 알카로이드 화합물에서 비롯한다. 캅사이신은 고추의 2차 대사산물로서, 고추의 발육에는 관계없으나 다른 식물이나 동물들로부터 고추를 보호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설에 따르면 고추의 캅사이신이 구강내 조직의 신경말단을 자극하면 마치 입안에 불이 난 것처럼 느끼게 된다고 한다. 이같은 기계적 통증이 대뇌로 전달되면 뇌는 반사적으로 자연 진통제인 엔돌핀을 분비해 진화작업을 시도한다.
바로 그 엔돌핀이 마치 마약에 취한 것과 같은 순간적 도취감에 빠져드는 부분적 환각상태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즉, 고추를 먹을 때마다 엔돌핀이 분비되고 급기야는 그 혀끝이 얼얼한 통각도 잊은 채 자극 뒤의 행복감을 즐기게 되는 것이다.
결국 이는 우리가 김치와 같은 매운 음식에 한번 맛을 들이면 왜 거의 중독되는지를 제한적이나마 설명하는 그럴법한 가설로 생각된다.
그러나 롤러코스터를 탈 때 느끼는 짜릿한 스릴을 잊지 못하는 것과 같은 단순한 논리로 우리가 김치에 탐닉하는 것을 설명하는 것은 좀 무리가 있지 않을까 싶다. 미국의 진화생물학자인 폴 셔먼은 특정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고추와 같은 향신료가 든 음식을 즐겨먹는 이유를 생존을 위한 적응으로 설명하고 있다.
고추는 항균력이 탁월한 향신료로 음식이 쉽게 부패하기 쉬운 더운 지역의 음식에 많이 쓰인다. 또 매운 음식을 먹게 되면 땀을 흘려 일시적으로 체온을 낮추는 이열치열의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반대로 우리나라와 같이 추운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는 매운 음식이 속을 따뜻하게 해주는 효과도 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영어에서는 맵다는 것을 뜨겁다는 의미의 ‘핫(hot)’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김치는 카로틴, 비타민 C, 토코페롤, 엽산, 구연산을 비롯한 각종 유기산, 불포화지방산 등 영양소와 섬유질이 풍부한 이상적인 건강식품이다.
한국인의 음식문화를 대표하는 김치는 이제 전 세계인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매혹적인 건강식품으로 등극하고 있다. 김치의 기능성을 과학적 방법으로 검증하고 그 결과를 적극적으로 홍보해야 한다.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이 소중한 전통식품을 산업화하고 세계에 널리 알리는 것은 김치 종주국으로서의 당연한 임무라 생각한다.
서영준(서울대 약대 교수.생화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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