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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와 수필의 공통점! |
한 편의 김치찌개 >
식탁의 단골손님 김치찌개. 따뜻한 국물을 원하거나 속이 녹아 나는 얼큰한 맛이 생각날 때 쉽게 찾을 수 있는 메뉴다. 재료로 돼지고기를 넣으면 돼지김치찌개, 두부가 들어가면 두부김치찌개, 참치 통조림을 한 깡통 따면 참치김치찌개가 된다. 김치를 먼저 넣고 달달 볶다가 멸치 우려낸 육수를 부어도 좋고, 처음부터 맑은 물을 넣고 끓여도 또 다른 맛이 있다. 그것만으로도 김치찌개의 역할은 할 수 있지만, 끓는 중간에 몇 가지의 양념을 추가한다면 더욱 진한 감동을 얻을 수도 있다.
나는 김치찌개에 수필쓰기를 대비해 본다. 수필은 한 그릇의 찌개다. 친근감 느껴지는 소재를 선택할 수 있는 점이 그렇고, 지나친 형식에 묶여 있지 않은 것, 같은 재료라도 끓이는 이의 손맛과 정성에 따라 그 맛이 달라지는 것이 그렇다. 수필의 화두는 '삶'이다. 주변에서 소재를 찾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공감대를 형성하는 면에서도 유리하다. 때로는 '신변기'로 저평가 당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작가가 얼마만큼 문학적으로 승화시켰느냐에 달려 있다고 본다.
집집마다 찌개를 끓이는 방법이 다양하다. 그에 따라 맛도 달라진다. 일정한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름대로의 구성을 필요로 한다. 그냥 마땅한 찬이 없어 형식적으로 끓여 냈을 때와, 정말로 가족들이 맛있게 먹기를 바라는 정성으로 만든 김치찌개는 한 숟갈 국물의 색깔부터가 다르다.
된장만 뚝배기에 담으랴? 김치찌개도 온기를 보존하는 뚝배기 속에서 그 맛을 더한다. 마치 수필의 여운이 가슴에 오래 머무는 것처럼... 뚝배기 사용에서의 주의점은 '끓어 넘침'이다. 양념이 넘쳐 버린 싱거운 찌개. 적당한 양의 조절이 필요하다. 이는 수필의 백미인 '독자의 몫'을 말한다. 너무 상세히 나열을 해 버리면 독자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
불의 세기도 센불에서 중간불로, 그리고 조금 후에 또 다시 센불로 마무리를 해야 한다. 처음부터 센불로 푸르르 끓이고 만 김치찌개는 즉흥적인 감성으로 흘려 써놓고 퇴고도 하지 않은 수필과 같다.
찌개를 끓이는 도중에 마늘 다진 것, 약간의 고춧가루, 파나 양파 등을 추가로 썰어 넣기도 한다. 이는 주재료만으로 만들어진 담백한 맛과는 다른, 진한 국물맛을 자아내기 때문이다. 수필도 마찬가지다. 사실을 근거로 하되, 문학이니만큼 읽는 맛도 더해 주어야 할 게 아닌가. 구성이나 표현에서, 도움이 되는 장치적 허구라면 찌개가 조미를 필요로 하는 것처럼 수필도 양념은 필요하다.
막 담근 새김치로 찌개를 끓이는 주부는 없다. 김치찌개는 어느 정도, 적당히 발효된 김치로 끓였을 때 제 맛을 낼 수가 있다. 이는 '수필은 경륜과 경험을 필요로 하는 문학'이라는 점과 통하지 않을까.
언젠가 한번은 정말 텁텁한 김치찌개를 끓인 적이 있다. 냉장고에 있는 돼지고기를 쇠고기로 잘못 알고 바지락 조개와 함께 넣은 것이다. 본래 바다에서 나는 것과 쇠고기는 어울려 시원한 국물을 만들어 내지만, 돼지 쪽은 절대 아니다. 글쓰기에서도 어울리지 않는 소재들을 이것 저것 섞어 놓아 주제를 흐리는 일이 있다.
산속에 있던 절이 민가 가까이로 내려왔고, 순수 예술만 고집하던 장르도 대중예술과 합류하여 색다른 조화를 이루고 있다. 문학에 있어서도 소설이나 시, 희곡 등 여타 장르들은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는 이 때에 수필문학이라고 해서 언제까지 난(蘭)이고 학(鶴)일 것인가? 대중의 앞에서, 대중과 함께하는 수필이 필요한 시대다.
쉬운 말로 어렵지 않게 쓰자. 대중이 호흡할 수 있도록. 수필 한 편 읽으면서 옥편 속을 헤매야 한다면 짜증나는 일 아닌가. 진실 앞에서 눈물은 정화의 빛을 발한다. '솔직성의 고백'을 잊지 않을 일이다. 부끄럼 없이 벗어야 한다, 자신만의 방법으로. 적당히 미화해서 조합한, 개성 없는 수필을 읽을 때, 비슷한 종류의 기성복을 입고 유행에 따른 화장을 한 얼굴들을 보는 것 같다.
김치찌개를 끓일 때도 마찬가지다. 재료는 비슷하지만 얼만큼의 양으로, 언제 추가 양념을 넣는가에 따라 그 맛은 모두가 다르다. 마치 사람마다 손가락 안쪽에 다른 지문을 갖고 있는 것처럼. 물론 가장 중요한 마무리는 거기에 사랑과 정성, 즉 마음이 들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대가 어려울수록, 찬비가 내리거나 바람이 쓸쓸할수록 따뜻함이 그리운 가슴들이 있다. 그 추운 가슴을 위해 한 편의 김치찌개를 끓이고 싶다.
Source: http://members.tripod.lycos.co.kr/rosemaria2000/essay01.htm |
